부산 유엔기념공원

재한유엔기념공원 소개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 묘지입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과 유엔참전용사 2,300여 분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수의 유엔군이 안장되었을 당시에는 약 11,000여 명이 안장되어 있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대부분 송환되어 11개국 2,311분이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해 계십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1955년 12월,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977(X)호를 채택하여 동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이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유지를 위한 유엔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에 UNCURK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 해체되면서 이곳에 안장자가 있는 11개국 대표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운영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여 재한유엔기념묘지라는 명칭을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했고, 영문 명칭은 그대로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란?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 묘지입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과 유엔참전용사 2,300여 분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수의 유엔군이 안장되었을 당시에는 약 11,000여 명이 안장되어 있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대부분 송환되어 11개국 2,311분이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해 계십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1955년 12월,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977(X)호를 채택하여 동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이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유지를 위한 유엔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에 UNCURK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이 해체되면서 이곳에 안장자가 있는 11개국 대표로 구성된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가 관리·운영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하여 재한유엔기념묘지라는 명칭을 재한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했고, 영문 명칭은 그대로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의 특별한 점?

재한유엔기념공원은 국제기구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유하며,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 사이에 체결된 협정에 의하여 다음의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불가침권입니다. 유엔기념공원은 유엔이 지정한 불가침지역이자 성지입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기관의 동의 없이는 대한민국의 행정력이 함부로 개입하거나 출입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를 목적으로 유엔기념공원에 들어온 경우, 경찰은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의 협조를 얻어 범인을 체포해야 합니다. 또한, 이곳의 관리주체인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는 공원 내 추모 분위기를 해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활동 일체를 금지시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면세특권입니다. 재한유엔기념공원은 일정 수준의 면세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법률과 규정에 의하며, 공원에 공용목적으로 공급되는 재화 또는 용역은 세금을 면제받습니다.

유엔기념공원의 로고 및 엠블렘

우리 공원의 로고는 세계에서 유엔이 지정한 단 하나의 유엔 기념 묘지라는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유엔의 로고를 바탕으로 유엔군의 철모를 그 위에 얹은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철모에는 UNMCK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를 넣어 재한유엔기념공원의 명칭이 드러나게 했습니다.

유엔기념공원 내 안장자 현황

유엔기념공원에는 총 11개국 2,311분의 유엔참전용사가 잠들어 계십니다. (2020년 12월 기준)
나라명 안장자 수 나라명 안장자 수
남아프리카공화국 11 (11) 영국 886 (884)
네덜란드 120 (117) 캐나다 380 (378)
노르웨이 1 (1) 터키 462 (462)
뉴질랜드 32 (32) 프랑스 46 (44)
대한민국 37 (36) 호주 281 (281)
미국 40 (0) 비전투원 등 기타 15 (4)
* 괄호는 전쟁 당시 사망한 안장자 수

안장자 스토리

(호주) 허머스톤 부부
특수부대 장교였던 케네스와 간호장교였던 낸시는 3년의 열애 끝에 결혼했으나, 신혼 3주만에 남편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1951년 10월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이후 부인은 간호장교로 퇴직하여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간호사로 봉사하며 생활했습니다. 아내는 60년동안 자녀도 없이 2008년 91세의 나이로 사망 후, 남편 곁에 합장되었습니다.

 

(캐나다) 허시 형제
동생(아치)이 자원입대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자, 고향에 남아있던 형 (조셉)은 동생이 걱정되어 철도공무원을 그만두고 동생과 같은 연대에 자원입대하여 함께 참전했습니다. 형이 같은 한국 땅에 있다는 것을 모르던 동생은 중공군과의 격전지에서 같은 성씨를 가진 군인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에 형에게 달려갔습니다. 같은 땅, 같은 부대에서 지내던 형제의 만남은 10개월 만에 이루어졌지만, 형은 23세의 나이로 동생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형을 남겨두고, 그의 유품과 캐나다로 귀국하여 평생을 형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그리움으로 살아갔습니다. 2011년, 81세로 사망한 동생은 형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유엔기념공원 묘비석에 새겨진 것처럼 ‘Born Brothers, Brothers in Arms, Brothers in Eternity (형제로 태어나, 전우로, 그리고 영원히 형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R. J. 베나르

한국전 참전 유엔군 용사인 故베나르 씨는 참전용사묘역에 첫 번째로 안장되셨습니다. 그는 프랑스 참전용사협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면서 한국에 2번 방문했는데,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우들과 함께 이곳에 안장되길 희망했습니다. 故베나르 씨가 안장되실 때, 유가족은 ‘이곳에 와 보니 왜 고인이 이곳에 잠들기를 원했는지 알 것 같다’ 라고 하며, 고인이 자랑스럽고 한국에 감사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베나르 부인 역시 사후에 남편 곁에 안장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영국) 윌리엄 스피크먼 VC

故스피크먼 씨는 영국에서 가장 영예로운 무공훈장으로 알려진 빅토리아십자 훈장을 받은 분입니다. 그는 1951년 11월, 마량산전투에서 적의 강력한 공격으로 육탄전이 계속되자 그와 그의 전우들은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며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故스피크먼 씨도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부대원들이 모두 철수할 때까지 4시간이 넘게 공격을 지속함으로써 많은 전우들이 후방으로 안전하게 후퇴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해당 전투에서 보여준 뛰어난 리더쉽과 용맹함, 그리고 희생정신을 인정받아 영연방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크로스 (Victoria Cross)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 후, 심한 PTSD로 힘든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전 한국을 방문하여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을 회상하며 “지금도 또 다시 한국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기꺼이 와서 한국을 지킬 것이다. 한국은 제2의 고향이고 조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맺음말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계신 분들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습니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가 평화를 향해 내 딛을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유엔기념공원의 명칭이 묘지에서 공원으로 변경되었지만, 이곳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유엔군이 안장되어 있는 묘지이며, 그 목적은 이들에 대한 참배라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원을 방문할 때는 경건한 마음가짐,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묘역에 들어가지 않기 등 여러 규칙을 잘 지켜주시고, 이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자유와 평화에 대한 소중함과 번영에 대한 감사함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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