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해 장건상선생 상

기본정보
시설명 소해 장건상선생 상
종류 동상
주제분류 의열투쟁
소재지 부산 중구 영주동 205-9 중앙공원 내 조각공원
관리자 부산시설공단 중앙공원사업소 (전화 : 051-860-7808)
사건년도 1882년
시설규모 좌대 1.5m, 동상(가로 1.8m, 세로 1.6m, 높이 5m)
건평 8㎡
부지면적 20㎡
건립취지
추모 대상 장건상(張建相, 1882~1974)
추모내용 장건상은 부산 사람으로 중국에서 동제사·의열단·대한민국임시정부·민족혁명당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6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신규식이 조직·운영하던 동제사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고 외무부 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11월 의열단이 창립될 때 총장이 되고 기밀부의 요직을 맡아 국내 무기반입 등을 지휘하였다. 1921년에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것을 주장하는 창조파의 일원으로 김립·원세훈·신숙 등과 조선공화정부를 북경에 수립하고 외무총장에 취임하였으며, 동년 8월 고려 공산당의 중앙정치위원겸 7인 정치부의 한사람으로 모스코바 공산당 회의에 참석하여 레닌을 면담하고 독립운동 지원자금 40만루블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1922년 고려공산당의 대외업무를 계속 수행하면서 의열단 김시현 등의 국내의열 활동도 지원하였다. 192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총장으로 있으면서 의열단원 이종암 등의 입국을 지원하고, 1926년 잡지 『혁명』을 북경에서 발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27년 의열단 제3기 간부훈련을 마치고 민족혁명당 당원으로 활동하며 1928년 의열단 고문이 되어 폭탄을 만들어 국내에 반입하는 일을 지휘하였다. 1939년 상해 일본영사관 형사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1년 동안 국내 각 경찰서로 끌려다니며 각종 고문을 받아 1941년 건강의 악화로 사경을 헤메던 중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유예 석방되어 가택연금 상태에서 휴양하였다. 다음해 국내를 탈출하여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 등의 직책을 수행하였고 1945년에는 독립운동선상의 좌우합작과 대동단결을 위해 임정대표로 연안에 파견되었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정부에서는 1986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관련인물 및
공훈현황
 
인물명 훈적 자세히보기
장건상 대통령장 자세히보기
시설주위 환경
유적지 근대역사관 (거리 : 1.8km, 접근방법 : 버스, 소요시간 : 23분)
관광명소 용두산공원 (거리 : 2km, 접근방법 : 버스, 소요시간 : 21분)
지역특산물 없음
관련 홈페이지 http://www.bsjunggu.go.kr/tour/index.junggu http://jungangpark.bisco.or.kr/
시설답사 및 교통
안내판
거리 부산역에서 2km
소요시간 버스 (으)로 24분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

Scroll Up